본문 바로가기

ⓟarody

[셜록존] 해빙(解氷) - 얼음이 녹을 때까지

# 셜록-존댓말 / 왓슨 - 반말입니다.
# 애정씬 없는 브로맨스류입니다.

 











“이게 다 뭐야? 냉동실의 음식들을 죄다 꺼내놓고!”

 부엌에 들어서자 나를 맞이하고 있던 건 녹고 있는 냉동식품들이었다. 그것들은 그들이 있을 자리가 아닌 식탁 위에서 물기를 줄줄 흘리고 있었다.

 “그것들보다 더 냉동실을 필요로 하는 녀석들이 있었거든요.”

냉동실 문을 열려고 하는 찰나, 들려오는 셜록의 목소리에 나는 열리기 직전의 문을 순간 멈췄다. 그리곤 냉장고를 가만히 응시했다. 나는 투시 능력이 없지만 왠지... 그 안에 있는 것이 어떤 것일지 어렴풋이 상상이 되었다. 초능력은 없지만 그것보다 높은 ‘경험치’란 것이 나에겐 있었다. 인간 신체의 어느 부위, 혹은 동물들의 시체... 보통 가정의 냉동실에 들어있는 일반적인 것들이랑은 거리가 멀 것이다. 뒤를 돌아보니, 셜록은 거실에 있는 소파 위에 길게 누워 아이스바를 먹고 있었다.

“지금 뭐 먹고 있는 거야?”

“차갑고 달콤하고, 아이스크림이 확실하네요.”

나의 건방진 플랫메이트는 날 보지도 않은 채 천장만 응시하며 무심한 말투로 대답했다. 그는 분명 무엇을 골똘히 생각하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그의 입은 자기가 무얼 먹고 있는 지도 모르고 기계적으로 우물우물 아이스바를 베어먹고 있었다.

“차갑고 달콤한건 때론 생각하는 걸 도와주죠.”

“그래. 그 아이스바는 내가 먹으려고 사논 거라고.”

 내 말에 셜록은 아이스바를 입 앞에서 멈추곤 나를 쳐다보았다. 

“당신 뭐 생각할거 있어요?” 

난 한숨을 쉬었다.  

“아니, 그냥 먹고 싶어서 산거야.” 

그는 다시 한 입 베어물었다. 

“다행이네요. 내가 사건을 해결하면 존 당신 덕분이에요.”

 “그거 잘 됐네. 꼭 해결하길 바라.” 

“아이스크림에게도 그게 더 나은 일일 거예요. 그 냉동실처럼. 더 필요로 하는 일에 쓰이는 거죠.” 

나는 왠지 모를 아득함에 눈을 감았다. 또다. 이런 느낌. 그와 같이 살면서부터 종종 느끼는 증상이다. 눈을 뜨고는 뒤돌아 다시 부엌으로 향했다. 식탁 위에는 음식들과, 얼려두었던 얼음들이 제 멋대로 뒹구르며 녹고 있었다.

 “그래-. 저 냉장고도 우리의 음식들 보다 너의 사건을 위해 더 필요하고, 내가 그냥 먹고 싶어서 다섯 블록 떨어진 가게까지 가서 사온 아이스바도 너를 위해 더 필요하단 거지. 그럼 여기서 녹고 있는 - 결국 상하고 말 운명인 - 이 음식들은 어디로 가야하지? 오- 허드슨 부인한테 부탁하면 될 거라고 말하겠지? 그래. 그러면 되겠군.”

 나는 식탁 위의 음식들을 집어 양손으로 한가득 안고서는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계단을 내려가는 내 발걸음 소리가 쿵쾅쿵쾅- 유난히 크게 울리는 듯 했다. 내 등 뒤에 뭐라고 말 하는 셜록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으나 난 무시했다. 차가운 것들을 품에 안고 있으니 손과 가슴, 배까지 차가워 졌다. 어째서인지, 심장까지 얼어버릴 것 같은 기분이었다.

허드슨 부인에게 부탁을 해서 그것들을 허드슨 부인네 냉장고에 잠시 동안 맡기기로 했다. 그녀는 무슨 일이냐고 묻지 않았다. 그녀도 경험치가 쌓인 거겠지.

“오, 존-. 옷이 완전 젖었네요.”

 녹으면서 흐른 물들이 어느새 내 옷에 다 스며들었다. 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괜찮아요. 곧 마를 거예요.”

 “아직 겨울이잖아요. 금방 안 마를 거예요. 어서 갈아입어요.”

 “알아서 할게요. 고맙습니다, 부인.” 

위층으로 올라오니 그녀의 말대로 아직은 공기가 싸늘했다. 젖은 옷 때문에 살에 냉기가 와닿았다. 게다가 셜록은 거실에 난로도 때지 않고 있었다. 그는 사건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고 있을 때 곧잘 그러곤 했다. 난 그의 모습을 보곤 또 다시 낮게 신음 섞인 한숨을 내고 말았다.

그는 자신이 아이스바를 다 먹었다는 것을 모르는지, 아이스바의 스틱을 씹고 있었다. 직 천장만을 응시하며. 저러다 스틱까지 먹어버리겠군. 난 그에게 다가가서 그의 손을 잡았다. 바로 스틱을 뺏으려는데 순간 그가 스틱을 꽉 쥐었다. 셜록은 미간을 찌푸린채 나를 올려다 보고 있었다.

“왜 이래요?”

“너 지금 나무 조각까지 먹으려고 하고 있다고!”

“그게 아니라, 당신 손이요.”

손? 난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스틱을 꽉 쥐고 있는 그의 손을 내가 잡고 있었다. 손의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그의 체온이 이렇게 따뜻했었나? 차가운 것들을 들고 있던 내 손이 싸늘하게 얼어 있던 터라, 그의 손이 상대적으로 매우 따스하게 느껴졌다.

 “왜 이렇게 차가워요?”

 “죽어가는 북극의 친구들을 구조하고 왔거든.”

셜록은 내 말을 이해 못한 채 눈을 깜빡이며 여전히 미간을 좁혔다. 내가 부엌 쪽을 향해 눈짓을 보내자 셜록은 내 시선을 따라 식탁을 보고는 ‘오’ 하며 이해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그의 손에서 스틱을 뺏으려하자 그가 이번엔 내 손을 잡았다. 내 손을 감싸고 따스한 온기가 전해졌다. 

 “왜?”

 "아까 당신 내려갈 때, 불렀어요.”

 “알아.”

 “근데 왜 그냥 갔어요?”

 “내 손이 얼어붙을 거 같아서 빨리 내려가려했거든. 나 신경쓰지 말고 얼른 사건 해결이나 하시지?”

 그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사건은 해결했어요. 당신 아이스크림 덕분에. 방금 레스트레이드 경감에게 메시지 보냈어요.”

 “그거 잘됐네.”

 “나한테 화났어요?”

셜록이 나의 눈을 응시했다. 이제 그의 사건은 여기로 옮겨온 것이다. 나는 그에게 손이 붙들린 채 고개를 젖히며 이제는 버릇이 된 한숨을 내뱉었다.


“그런 쓸데없는 짓은 안 해.”

 “쓸데없는 짓이에요?”

 “네 식대로라면 그렇잖아. 화내봤자 상대방이 알아주지도 않는데 그런 소모적인 일을 왜 해? 쓸데없는 짓이지.”

 “당신은 내가 아니잖아요. 그럼 당신이 아까부터 지금까지 한 행동은 뭐에요.”

 “넌 내가 뭘 하고 있었는지 보고 있지도 않았잖아.”

 “냉장고 문을 열곤 나에게 뭐라뭐라 한 후, 쿵쾅쿵쾅 계단을 내려갔죠. 내가 부르는 것도 듣지 않고. 그리고 난 당신이 내게 화가 났다고 판단했어요.”

 “그게 널 신경쓰이게 해?”

 “네.”

난 그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나를 응시하고 있는 그의 눈을. 그리고는 느껴졌다. 그의 손에서 전해져오는 온기를. 그의 체온이 나의 손을 녹이고 있었다.

나는 셜록의 눈을 매일매일 봐왔다. 사건 현장에서 증거들을 살필 때, 자신의 추리를 열심히 설명할 때, 일상 생활에서 주변 사물들을 바라볼 때, 그의 눈동자는 흔들림이 없었다. 확신에 차있고, 차갑고 날카로웠다. 하지만 지금 그의 눈동자는... 글쎄, 뭘 말하고 싶은지 모르겠다. 이 손을 놓지 않고 있는 이유도.

런데 이상한 건 이렇게 마주보고 있으니 아까 내가 느꼈던 아득함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느새 내가 화를 냈었던 이유도. 아니- 화가 났던 것도 잊어버렸다. 단순히 그에게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이 구차해서 넘어가는 것이 아니다. 뭐, 그것 때문인 것도 아주 없진 않지만. Whatever. 나의 손을 그의 손에서 빼내며, 스틱을 뺏었다.

 “네 추리는 틀렸어, 셜록. 내가 정말 화났다면 네가 나무 조각을 삼키는 걸 그냥 두고 봤겠지. 난 네 목숨을 구한거라고.” 

그의 눈앞에 스틱을 흔들고는 미소를 지으니 그제서야 그의 입가에도 미소가 지어졌다.

 “닥터로서 훌륭한 판단이군요.”

나는 거실을 지나 부엌으로 들어와 휴지통에 나무 스틱을 버렸다. 어느새 내 손은 평소 체온으로 돌아와 있었다. 식탁 위를 보니 아까 뒹굴고 있던 얼음들은 다 녹아 물이 되어버렸다. 물바다가 된 식탁을 타월로 닦고 거실로 다시 나오니 셜록이 벽난로 앞에 앉아 불을 지피고 있었다.

 

 

  

 

 

 

 

 

 

 

“늦는다고? 오늘 냉동실 정리 한다고 했잖아! 허드슨 부인한테 말해서 오늘은 꼭 다 가져간다 했는데!” 

「레스트레이드가 호출해서 급히 나오느라 못했어요. 제가 여기서 봐야할 것들이 많아요.」

 난 베이커가에 들어서며 셜록의 전화를 받았다. 벌써 일주일 넘게 냉동실 안의 그의 친구들을 치우지 않고 있었다. 난 절대 그 대신 그의 냉동실을 치워주지 않을 것이다. 

“알았어. 난 냉장고엔 손도 안 댈테니까 그리 알어.” 

「다른 냉장고엔 손을 대야할걸요-. 이만 끊.. 망할 앤더슨-! 당장 그거 내려놓으라고!」 

뚝. 그의 고함 소리와 함께 통화가 끝났다. 난 또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다른 냉장고...? 무슨 소리야. 22번가에 들어와서 허드슨 부인에게 인사를 하고 우리의 플랫으로 올라갔다. 허드슨 부인은 며칠째 자리 차지하고 있는 냉동식품들을 내다버리겠다고 협박해댔다. 그 소리들을 무시하고 부엌에 들어서니, 냉장고 2개가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한 냉장고에는 S, 다른 냉장고에는 J라고 노란 스프레이로 표시되 있었다.

나는 기가 차 웃음이 나왔다.
도대체 언제 사논거야 - 하며 J라고 써져있는 냉장고 문을 열었다.
냉동실 가득, 얼마 전 내가 먹지 못한 그 아이스바가 쌓여있었다. 난 그것들을 보고 있며 소리 없이 미소 짓다가 문득 뭔가가 떠올라, 얼른 계단으로 튀어내려갔다.

 

“허드슨 부인! 잠깐만요!!!”

 

 

 

 

 

 

 

 

 - The End -







 

'ⓟarod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셜록존] Confession  (11) 2011.06.08
[셜록존] A wounded heart  (4) 2010.12.14
[셜록존] Another Game  (4) 2010.11.26
[셜록존] Walking in the air  (3) 2010.11.26
[셜록존] 왓슨 박사의 비밀 포스팅 - Dream  (2) 2010.1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