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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 여해서애 단문





저녁부터 내리던 비는 밤이 될수록 더욱 거세게 내렸다. 모처럼 여해가 방문해 식사를 마치고, 술잔을 기울이다 보니 두 식경 정도 지난 듯했다. 처마를 두드리는 빗줄기가 요란한 소리를 냈고, 우리는 그 음률을 감상하기 위해 말소리를 작게 내어 대화했다. 천천히 술에 취해 둘 다 의관을 편히 하고 앉았다 눕기를 반복했다. 결국, 나보다 더 취한 그가 몸을 가누기 어려워하기에 나의 무릎에 그의 머리를 누이게 했다. 그가 시선을 흐트러트리지 않고 물끄러미 나를 올려보기에 많이 취했나 싶었다. 


"어찌 그리 보시오."


"전쟁 중에 대감의 꿈을 종종 꾸었다 하지 않았습니까. 헌데 지난밤에는 참으로 기이한 꿈을 꾸었습니다."


"어떤 꿈이었습니까?"


"꿈에서 우리 둘 다 이상한 모양을 하고 있었습니다. 해괴한 오랑캐의 의복을 걸치고, 머리는 단발을 한 채였습니다."


"실로 망측합니다그려."


"그리고 희한하게 생긴 작은 철판을 들고 있었는데, 신묘하게도 이것으로 천 리 밖에 있는 대감의 목소리를 들을 수도 있었습니다."


"참으로 해괴망측한 꿈을 꾸셨군요. 요즘 노고가 많으신가 봅니다."


"저는 그 이상한 꿈이 좋았습니다."


여해는 나의 얼굴 너머 먼 곳을 보는 듯한 눈으로 말했다.

나는 의아하게 그를 내려보았다. 


"대감과 함께 있었으니까요. 또한, 멀리 있는 대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요."


문득 그가 꾼 꿈이 우리의 전세나 내세는 아닐까, 그런 생각이 스쳤다. 그때 그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저는 꿈속에만 살지 않을 것입니다. 적들을 모조리 몰아내고, 이 조선을 평화로운 땅으로 만들어서- 대감과 함께 꿈보다 더 행복한 현실에서 살 것입니다."


조금 전 취한 기색은 간데없고, 그 눈빛이 형형하고 단호하기가 평소와 같았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나를 올려보던 그가 손을 뻗어 눈물을 닦았으나, 그의 손바닥은 젖지 않았다. 그가 당황하여 물었다.


"아직도 제가 꿈속에 있는 겁니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건 그대의 꿈이 아닙니다."

비바람이 억세게 퍼부어 방 안까지 비가 들이치고 물이 차올랐다. 
우리는 서로의 손을 꼭 잡은 채 꼼짝하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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