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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존] Confession





 




허탈한 마음으로 베이커가 221B의 문을 밀고 들어가니 허드슨 부인의 장기간 외출을 알려주는 머핀 냄새가 나를 맞이했다. 버터양이 너무 많다고 이야기 했는데 여전히 줄이지 않았군. 허드슨 부인은 오랜시간 외출을 하거나 멀리 여행을 떠날 경우 머핀을 잔뜩 만들어 놓고 가고는 한다. 나와 존을 위한 간식이지만 대부분은 존의 위속으로 사라지는 편이다. 나는 사건이 없을 때나 하나 정도 짚어먹는다. 단맛은 지루한 내 뇌에 약간의 자극을 준다. 나는 머핀을 하나 짚어들고 계단을 올랐다.

20분 전까지만해도 흥분된 발걸음으로 이 계단을 내려갔었다. 아무 사건도 일어나지 않아 몇주동안 지루한 날들을 보내던 나는 살인사건이라는 레스트라드의 호출을 받자마자 신나서 뛰어나갔다. 얼마나 흥분했는지 평소와는 달리 그냥 집에 있겠다는 존을 신경쓰지도 않은채 혼자 택시를 타고 스코틀랜드 야드로 향했다. 하지만 힘빠지게도, 피해자의 애인이었던 남자가 살인을 저지른지 5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자수를 하고 나타나 내가 그곳에서 한 일이라곤 수갑을 찬채 고개를 푹 숙이고 앉아있는 범인과 그 앞에 있는 레스트라드를 원망섞인 눈으로 쏘아보고 온 것 뿐이었다. 레스트라드는 사건이 잘 해결됐으니 잘 된거라고 말했지만 이건 내가 기대하던 상황이 아니었다. 이따위 일로 날 부르지 말라고요. 치정에 의한 충동적 살인인지 계획적 살인인지 현장에서 척 보면 알수 있지 않아요? 나의 말에 레스트라드는 눈썹을 들어올리며 답을 대신했다. 난 한숨을 내쉬고는 뒤돌아 떨리는 몸을 웅크린채 앉아있는 범인의 정수리를 내려다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런 허술한 살인 따위로 평생 감옥 신세를 지다니 정말 한심하군. 짜증이 머리속을 가득 채워 서둘러 야드 건물을 나와 베이커가로 돌아왔다.

계단을 오르며 머핀을 한입 베어 물었을 때 예상보다 빨리 돌아온 나를 보고 어리둥절할 존의 모습이 상상이 됐다. 그와 동시에 나에겐 흔치 않은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다. 나는 약간 짜증이 나있는 상태이고, 동시에 허탈했으며, 더불어 지루함이 최고조에 이르고 있었다. 그건 다시 말해 내가 어떤 일이든 일으킬수 있다는 뜻이었다. 아주 사소하고 유치한 장난이라 할지라도. 나는 발걸음 소리를 최대한 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천천히 계단을 올랐다. 내가 집에서 나올때만해도 존은 거실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몇시간 동안 고개를 들지도 않고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별일 없는 한 계속 그 상태일 가능성이 많았다. 책의 두깨로 보아 200페이지는 넘게 남아있던게 기억 속에 저장되어 있다. 하지만 문으로 가까이 다가가자 나의 예상이 틀렸다는게 판명되었다. 존은 누군가와 대화하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약간 격양된 상태였다. 문고리를 잡고 문을 열려고 할 때였다.

"......아냐, 셜록은 그렇지 않을거야."

갑작스레 나의 이름이 언급되자 나도 모르게 순간 몸이 움찔거리며 다음 행동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문 너머로 존 외에 다른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존은 통화중인 것 같았다. 휴대폰을 통해 나오는 상대방의 목소리는 제법 커서 방안에 누군가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부엌으로 통하는 문을 힐끗 바라보니 살짝 열려 있었다. 나는 최대한 조용한 걸음으로 그 문쪽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끼익하고 마찰음이 났지만 통화에 열중하고 있는 존은 듣지 못한 것 같았다. 플랫메이트의 통화를 엿듣는 취미는 없지만 그 통화 내용에 내가 등장하는 경우는 그냥 모르는 척 지나가기가 더 힘들었다. 존은 부엌을 등진채 창가쪽을 바라보며 통화하고 있었다. 나는 몸을 숙이고 바닥에 쭈그린 모양새로 나의 존재감을 최대한 숨기려 애썼다. 플랫 안으로 들어오자 존의 휴대폰에서 나오는 목소리가 더 생생하게 들렸다. 존도 그 목소리가 시끄러웠는지 휴대폰을 들고 있는 팔을 귀에서 멀리 떨어뜨리고 통화하고 있었다. 자신이 말을 할 때만 휴대폰을 입가로 가져갔다. 존은 뭔가 곤란한 일을 겪은 사람처럼 휴대폰을 들고 있지 않은 다른 손으로 이마를 짚은채 짧게 내려온 앞머리를 흐트러뜨렸다.

"아니라고 했잖아, 해리. 누나한테 이런 얘기를 한 내가 멍청했어."

[난 네가 그 얘기를 할수 있는 유일한 상대라고 생각하는데. 그에게 말해, 존.]

존의 통화 상대는 그의 누나인 해리엇 왓슨이었다. 그녀를 직접 본적은 한번도 없었다. 목소리를 듣는 것도 처음이었다.
뭘 말하라는 거지? 난 그들의 대화가 무엇엔 관한 것인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존은 머리를 헝클어뜨리던 손을 던지듯 내리고는 허리를 짚고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말했잖아. 셜록은-나와는 다르다고. 내가 셜록에게 갖는 감정을 셜록은 느끼지 못해."

감정? 감정이라는 단어가 갖는 수많은 범주가 나의 머리속에서 데이터를 정리하듯 좍 펼쳐졌다. 존의 말에 훈계하듯 쏘아붙이는 해리의 목소리가 휴대폰을 타고 울렸다.

[그건 모르는거야! 계집애처럼 굴지 말고 남자답게 고백하라고 존 왓슨. 그를 사랑한다고 말이야.]

"그건 셜록을 배려하지 않는 이기적인 짓이야-. 그는 나에게 전혀 그런 마음이 없다고."

[그가 말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아?]

"말한 적 있어. 우리가 처음 만난 날-. 자기는 일과 결혼했다고..."

[...처음 만난 날 이미 고백했어?]

"아니! 했을리가 없잖아! 그건 셜록이 내가 한 말을 잘못 듣고 오해해서..."

[네가 무슨 말을 했는데? Oh, my GOD. 빨리 처음부터 말해봐, 존. 뭔가 있었구나? 어쩐지- 처음 보는 사람이랑 만난지 하루만에 플랫메이트가 되었다길래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았어!]

"닥쳐, 해리-. 내 말을 똑바로..."

존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뒤를 돌았다. 바닥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가 들던 존은 그 시선 끝에 있는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마치 호흡이 멈춘 사람 같아 보였다. 나는 바닥에 쪼그려 앉아있는 자세 그대로 존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그런 얼굴을 보자 나도 덩달아 숨이 멈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존의 휴대폰 너머에서는 존을 부르는 해리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울렸다. 잠시후 존의 눈커풀이 깜빡이고 코 끝이 움찔거리며 움직였다. 그가 숨을 쉬고 있다는게 확인되자 나 역시 굳어있던 몸을 움직여 일으켰다. 존은 반복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불러대는 휴대폰을 꺼버리곤 바닥에 떨어뜨렸다. 내가 허리를 다 피고 몸을 세울 때쯤 존은 나를 향해 천천히 한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내 계산대로라면 그가 있는 곳으로부터 나까지의 거리는 나의 보폭으로는 여섯걸음, 그의 보폭으로는 여덟걸음 정도이다. 존은 처음 두세걸음은 천천히, 다음 네걸음은 빠르게 걸었다. 그리고 남은 한걸음은 내가 걸었다. 그는 내게로 향하는 그 짧지만 긴 순간동안 나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마지막 순간에 그는 눈을 감았다. 나의 두볼을 양손으로 감싼채 입을 맞춰오는 그 순간에.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을 내려다보며 내가 하고있는 생각이란 '존의 입술은 참 촉촉하군.' 그정도가 다였다. 그순간에 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다. 존의 손이 내 얼굴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것이 느껴지자 허공을 부유하고 있던 나의 두손으로 그의 허리를 잡고 싶어졌다. 그리고 다음에 든 생각은 '입술을 열면 그의 혀가 들어올까'라는 호기심이었다. 난 그 행동들을 동시에 실행했다. 내가 손에 들고 있던 머핀을 떨어뜨리고 그의 허리를 안은 후 입술을 벌리자 나의 입술에 기대고 있던 그의 입술이 미끌어지듯 내 입안으로 들어왔다. 존은 혀를 내밀지 않았고 오히려 내가 그의 입을 삼키는 모양새가 되었다. 그러자 내 품안의 존의 몸이 도망치듯 뒷걸음질치며 빠져나갔다. 나를 올려다보는 존의 눈에는 놀라움과 혼란, 당혹스러움 등이 뒤섞였다. 뭐지. 덮친건 본인이면서.

"셔, 셜록?" 

"응, 존."

존은 나의 타액이 묻은 입가를 닦지도 않고 입을 벌린채 멍하니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지금 존의 얼굴은 여태까지 내가 보아왔던 그의 얼굴 중 제일 새로운 것이었다. 그리고 가장 붉은 색이었다. 나는 슬슬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짜증과 허탈함, 지루함으로 뭉쳐있던 사고회로들이 순식간에 풀어지며 잠들어있던 나의 뇌를 깨웠다. 마치 재미있는 사건을 만난듯이. 하지만 그때와 다른 하나는 머리만 빨리 도는게 아니라 심장도 더불어 빠르게 뛴다는 것이었다. 존은 여전히 의아한 눈빛으로 나를 보고있었다. 오, 아마도 지금 내 행동이 플랫메이트의 갑작스런 입맞춤을 받은 사람에게서 볼수 있는 일반적인 반응이 아니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내가 일반적인 사람의 범주에 들지 않는다는건 셜록 홈즈를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인지하고 있는 사실 아닌가? 

"존."

"셜록, 내가 한 키스가 무슨 의미의 키스인지... 모르는건 아니지?" 

조심스레 건네는 그의 말에 난 미간을 찌푸렸다. 너무하는구만. 나를 너무 과소평가하는 군, 존.

"내가 비록... 자네가 지난 몇개월동안 나에게 친구나 동료 이상의 감정을 가졌다는 건 몰랐다 치더라도- 지금 이순간 다 알았네." 

내 말에 존은 눈을 꽉 감았다 떴다. 그의 얼굴엔 아직도 홍조가 가득했다. 

"...기분 나쁘진 않은가?"

기분? ...솔직히 말하자면 나의 의도와 상관없이 몇몇의 남자들이 나에게 호감을 표현한 적이 있었으나 대체로 나는 그것들이 귀찮았다. 하지만 사건의 정보 수집을 위해 필요에 따라 그들을 이용하기 위해 그들과 잠자리를 같이 한적도 있었다. 그랬기에 기분이 나쁘고 안나쁘고의 문제는 내게 없었다. 그런 경험에 비해서 조금전 존의 키스는 기분 좋은 쪽에 속했다. 너무 짧아서 아쉬웠을 정도로.

존이 언제부터 나를 우정이 아닌 애정의 상대로 여겼는지 그런 감정의 변화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 나는 알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재고해볼 여지가 없는건 아니었다. 우리가 처음 만나 안젤로의 가게에서 나눈 대화들을 떠올려봤다. 내가 그의 말을 오해한게 아니라 그가 나의 말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그때 내가 미리 선을 그어놓긴 했지만 나는 존과 연애라는 문제에 얽히게 될 가능성을 염두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내가 선을 그은 것은 그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나의 편을 들어주기 전이었고, 망할 택시기사에게서 나의 목숨을 구하기 전이었고, 나의 플랫메이트가 되어 여러 사건을 함께 하기 전의 일이었다. 그 이후로 그와 내가 이런 얘기를 나눌 기회가 없었다는건 꽤나 안타까운 일이지만, 뭐. 구구절절 설명해야 하는건가? 나에게 있어서 연애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들에 비해 우선순위가 낮은 것' 뿐이라는 걸. 조금 전 해리와 존의 통화 내용을 들으며 깨달았다. 존은 '그는 아니야, 그럴리 없어.'라고 단언했다. 그의 말에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마치 그를 처음 만난 날, '경찰은 아마추어에게 자문을 구하지 않잖아요?'라는 그의 말에 적당한 답을 내준것처럼. 셜록 홈즈라는 인간을 그만의 고정관념으로 정의내리는 걸 그만두게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항상 그의 상상 이상에 존재하고 싶다. 그가 놀라는 표정을 보는 건 꽤 즐거웠다.

"전혀."

내가 어깨를 들썩이며 말하자 예상대로 그는 내가 원하는 그 표정을 지어보였다. 나는 뒤로 몇걸음 물러난 그를 향해 한걸음 내딛었다. 다행히 이제 존은 세상의 많은 멍청이들과는 달리 나의 행동과 눈빛만으로 많은 것을 이해할수 있었다. 그게 내가 존을 마음에 들어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존은 조금전까지 지었던 놀란 표정을 지우고, 내가 좋아하는 또다른 표정 중 하나인 진지하고도 단호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나에게로 걸어왔을 때 보여주었던. 이번엔 내가 그에게 먼저 다가갔다. 존이 나의 셔츠자락을 그러쥐며 눈을 감았고 나는 그 팔을 감싸안았다. 그의 촉촉한 입술의 감촉을 다시 한번 만끽하며 동시에 그의 금빛 속눈썹을 또 다시 감상했다. 내가 입을 벌리자 이번엔 망설이지 않고 혀를 집어넣었다. 우리의 혀가 맞닿으며 얽히자 나는 목 뒤로 짜릿한 무언가가 흐르는 것이 느껴졌고 나도 모르게 본능적인 신음을 토해낸 것 같았다. 파르르 떨리던 그의 속눈썹이 파도처럼 걷히고 깊은 바다빛 같은 눈동자가 나를 마주했다. 그 바다 속에 갇힌 것 같은 기분 때문인지 나는 숨이 찼다. 존이 잠시 입술을 떼어내고 속삭이자 우리의 깊은 입맞춤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다. 존 역시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눈 감아. 셜록."

난 그의 말대로 했고 미소 짓고있는 나의 입술 위로 다시 그의 입술이 겹쳐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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